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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문화

보령의 문화 글의 상세내용
제목 열사 유준근
구분 역사인물
내용 일제(日帝)와 싸우며 나라위해 몸바친 열사(烈士) 유준근(柳濬根)

보령시(保寧郡) 청소면(靑所面) 신송리(新松里)에 독립투사 유준근(柳濬根)의 묘(墓)가 있다.

「이 나라를 팔아먹는 놈이 누구냐고 울부짖던 사람이 나라 백성을 이렇게 헌신작처럼 버릴려면 차라리 대감자리에 앉아 있지를 말지 그 대감의 조상에 왜놈의 핏줄이 섞였나 족보(族譜)를 가져와보라」하고 울부짖으며 창칼을 들고 뛰어나오는 유준근(柳濬根)의 눈물에 감동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몽둥이를 들고 앞장을 선다.

「여보시오 그래 사람이 밥을 세끼 먹더래도 마음이 편해야 밥이 넘어가지 않겠소이까! 사람이 한평생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 편히 살자고 일을 하고 집을 짓는건데 나라를 다스리는 대감들은 그래 무슨 뱃장으로 나라를 팔아 억습니까? 그 놈들이 팔아먹은 우리땅을 우리가 되찾읍시다.」

그가 다시 소리치자 마을사람들은 크게 환성을 질렀다. 나라에서 참판 벼슬을 지낸 민종식(閔宗植) 대감이 청양(靑陽) 칠갑산(七甲山) 천장리(天庄里)에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의거한 유준근은 의병들이 홍산(鴻山) 서천(舒川) 비인 남포(藍浦)에서 합세한 민중들로 보령(保寧)에 다달으자 그는 이곳 사람들과 호응을 해서 홍주성(洪州城)으로 쳐들어 갔다.

그는 철종(哲宗) 11년(1860)에 보령시(保寧郡) 대천읍(大川邑) 내항리(內項里)에서 태어났다. 그의 자는 순경(舜卿)이고 호는 우록(友鹿)이라 하였으며 본관은 전주(全州)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기운이 장사였으며 정의감이 강했던 그는 홍주읍 홍주읍성(洪州邑城)에 진을치고 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나라잃은 슬픔에 나라를 세워야겠다고 의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의병들이 이 곳을 점령하자 처음엔 관군과 연합한 왜군 70여명이 현대식으로 무장한 총포를 거느리고 공격해왔으나 단숨에 격퇴해 버렸다.

다음번에는 많은 왜군들이 쳐들어옴에따라 피 비린내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총으로 무장한 오랑캐와 맨주먹으로 싸우는 싸움은 참으로 눈으로 볼 수 없을만치 처참했다. 이 싸움에서 유준근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그들에게 잡히어 왜놈의 땅 대마도(對馬島) 형무소(刑務所)에 같히게 되었다.

나라잃은 설움도 억울한데 더구나 왜나라로 잡혀와서 형무소에 갇히니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이곳 형무소에 갇히니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이곳 형무소에 들어서자 이곳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선생도 갇혀 있었다.

그는 최익현(崔益鉉)선생과 우국의 일념에 나라를 다시세워야 한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눈물도 말라서 의분을 토하다가 최익현(崔益鉉)선생의 영구를 모시고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다. 그가 부산(釜山)에 도착하자 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었다. 허나 슬픔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않고 민주앞에서 영구를 모시니 독립투사로서의 그의 늠름한 행동에 머리를 숙으리는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유준근은 그 후에도 4년간을 또 옥살이가 이어졌으며 옥에서 풀려나오자 그때는 이 나라는 모두 왜놈들의 천하였다. 그래서 그는 두문불출 하며 독립운동을 할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선비들에겐 우국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왜놈들을 보면 눈을 부릅떳으며 왜놈의 앞잡이들에겐 조국으로 돌아오라고 호통을 쳤었다.

한시도 나라를 잊지않은 그는 삼일운동(三一運動)때 이조말엽의 학자이며 의정부참판(議政府參判)을 지낸 곽종석(郭鐘錫)등 167명의 유림들과 함께 파리(巴里)에서 열리는 평화회의에 탄원서를 올리기도 했다.

한나라가 존재 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백성 때문에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백성의 뜻을 멀리한 정치는 독재정치이며 무능한 정치라고 그는 말을 했다. 백성을 억누르는 군벌정치는 백성의 피를 흘리게 하는 정치이며 나라의 기틀은 백성의 뜻에 좌우되는 것이라고도 역설하였다. 나라가 없어졌는데 그 나라를 짓밟는 침략자의 주구노릇을 할 수 있는 백성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민족의 반역자라고도 말했다. 어찌 한 백성으로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어떻게 가족이 존재할
수 있으며 백성이 있을수 있느냐고도 말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일생동안을 나라를 위해 끝까지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거둔 위대한 애국자요 보령 5열사의 한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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